미시감

김규영, 설고은, 이진영, 젤다킨, 한지훈

2022년 8월 18일 - 8월 27일

우석갤러리

기획 ㅣ 고혜빈, 김예지

그래픽디자인 ㅣ 맹자윤

사진 ㅣ 고혜빈, 젤다킨

후원 ㅣ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


Jamais Vu

18 August - 27 August 2022 

Woosuk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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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9+’ 개의 내용물이 담긴 메일함과 사진첩, 그리고 플레이리스트들. 정보의 홍수에 휩쓸린 채 끊임없이 밀려드는 콘텐츠를 즉각적으로 처리하지 못해 당장의 수용을 미루고 '일단 캡처'하거나 '나중에 볼 목록'에 저장해두는 습관의 산물이다. 

차마 그 방대한 수량을 다 보여줄 수 없어 가장 큰 세 자리 수와 그 옆에 붙은 ‘+’ 기호로 수렴된 이미지, 비디오, GIF와 클립들은 그들이 자리한 기기의 물리적인 용량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고 흘러 전자통신의 망에 ‘구름(cloud)’을 이루곤 한다. 그리고 이내 무수한 물방울 입자처럼 구름 덩어리 속에 흩어져버린다. 여기서 기약 없는 미래에 다시 보기 위해 강박적으로 저장되었던 파일들은 비가시적이게 된다. 

각종 콘텐츠와 정보가 덩어리 진 구름이 퍼져 형성하는 안개는 일종의 몽환상태를 유발한다. 시지각의 주의력을 둔화하며, 개별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집중력, 그리고 기억력을 저하시킨다. 미디어 이론가 노르베르트 볼츠(Norbert Bolz)가 “정보의 과잉과 빈약한 관심”1으로 이른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의 현실은 분명히 보고 듣고 잊지 않기 위해 저장해 둔 파일도 수일 내 ‘듣도 보도 못한’ 것처럼 만든다. 일종의 지각 장애이자 기억의 오류로서, 평소 익히 접하고 알고 있던 대상이 갑자기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는 ‘미시감’은 그렇게 발생한다. 

문제는 이 기억의 재발굴 또는 재고 역시 디지털의 규율 속에서 빈번히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아이폰이 그러하듯, ‘너를 위해(For You)’ 미시적으로 흩어진 시지각의 파편을 선별하고 거시적 관점에서 복기할 만한 ‘추억’으로 끼워 맞춰 주는 주체는 주로 알고리즘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정보 중에서도 개별적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수집(collecting)한 것이 지나쳐 병적인 비축(hoarding)이 되고, 우리가 그러모은 사사로운 대상에 대한 주체성을 잃는 실태를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전시의 참여 작가들은 이 미시적인 디지털 콘텐츠들의 모양과 서사를 각자의 조형언어로 재조합하며 익숙한 것을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바라보게 한다. 어떤 구름이든 날이 개고 그 사이로 은색 빛줄기가 뿜어져 나올 날은 있다는 명언처럼, 방대한 클라우드 속 콘텐츠 입자들을 촘촘히 꿰어낸 작가들의 화폭과 정경에서 또 다른 시각적 지평으로의 길을 가리키는 빛줄기를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 고혜빈,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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