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티노프 마스크
이진영, 정지현
2023년 11월 7일 - 26일
부연 그리고 옹노
기획 ㅣ 박서영
디자인 ㅣ정사록
사진 ㅣ 이정빈
글 ㅣ 이소임, 조재연
후원 ㅣ 인천광역시, (재)인천문화재단
Bahtinov Mask
Jinyoung Lee, Jihyun Jung
7 - 26 November 2023
Buyeon and Ongno
부연 Buyeon
옹노 Ongno
무엇인가가 가능해지는 동안, 한편으로 무언가는 불가능해진다. 세상의 많은 보전 법칙의 원리와 같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듣고, 형체 없던 것을 만져보게 된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쥐고 있던 것의 일부를 내려놓아야 하고, 새로움을 제외한 나머지가 흐려지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하며, 가늠할 수 없는 가능성의 무한한 범위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가능성에 발 딛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 생각했으니, 이는 자발적으로 구현한 역설이리라.
전시 《바흐티노프 마스크》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직시하는 가운데,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가 놓치고, 잊고, 외면하게 된 영역에 주목한다.
이진영 작가는 오늘날 소통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가운데 이를 상쇄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에게 ‘오늘날의 소통 방식’은 ‘이모지(emoji)’로 요약된다. 이 이미지-언어는 소통을 휘발적이고 몰개성적으로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하여 작가는 무겁고 손이 많이 가는 콘크리트 조각 작품으로 이를 물화시켜 묵직한 물성을 부여한다. 이로써 이모지의 단점은 매체의 속성으로 보완되며, 나아가 이모지는 디지털 기기 속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존재감과 분위기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단순히 오늘날의 소통 방식의 문제점을 꼬집거나 조각이라는 매체를 우상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도, 문자 언어가 결여한 추상성을 대리하면서도 소통을 더 모호하고 간소하게 만들어 버린 이모지의 이중성, 특별한 것 없는 건축 재료가 예술 작품으로 제시될 때 변화하는 지위, 물성으로 흐려지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와 같이, 새롭게 생겨나거나 기존에 존재하던 대상들의 정의와 분류를 의심하게 한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 소재와 형식 간의 줄다리기로 익숙함에 가려진 대상의 양가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가치판단의 조건을 저울질함으로써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정지현 작가는 현대인들의 편의를 위해 고안된 도구가 역으로 우리의 신체를 억압하고 재단하는 상황을 가시화한다. 작가의 말마따나 도구를 사용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에는 어느 정도 자학적인 면이 있다. 신체 단련을 위해 운동기구로 몸을 혹사하거나, 소통 단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마트폰을 놓지 못해 거북목을 갖게 된, 거울에 비친 자화상만 봐도 그렇다. 이를 미루어 보아 ‘향상’과 ‘발전’이라는, 도구의 탄생 이유에 기저 한 긍정적인 뉘앙스가 ‘편향’과 ‘퇴화’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대체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또한 도구로서 ‘정상’과 ‘일반’에 대한 기준이 생기는 광경 역시 도구가 제 역할을 잊고 너무나 많은 권한을 거머쥔 상황을 암시하기도 한다. 도구에 맞춰진 신체와 일상, 이를 떠안고 사는 작가는 이때 이는 불안과 무기력감을 주제로 도구의 아상블라주를 선보인다. 그 누구보다도 도구와 친숙하고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의존적인 작가의 태도가 사용자를 초과하는 도구의 욕망을 먼저 알아챈 듯하다. 을씨년스러운 검은 조각으로써 드러나는 것은 맹목적으로 사물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뒤틀린 욕망과 주체-객체 관계에 한정되지 않는 인간과 사물의 위상 변화다.
망원경으로 천체를 촬영할 때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돕는 장치, 바흐티노프 마스크(bahtinov mask). 이 장치는 몇 개의 좁은 틈만을 허용해 가시영역을 좁히면서도 가시 대상을 또렷이 하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일을 해낸다. 현상의 단면을 작품으로 관찰하게 하는, 당연시 여겼던 현상에 틈을 내 현실의 해상도를 높이고 그것의 이면을 살피게 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이러한 바흐티노프 마스크의 역할과 등치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변적이고 테두리 지을 수 없는 ‘천체’의 속성과 ‘가능성’의 성질을 유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간의 연결은 끈끈해진다. ‘가능성’ 자체는 입장이 없다. 그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과 방향은 천체를 관측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바흐티노프 마스크와 작가들의 작품은 말한다.
― 박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