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존재의 미학 : ‘이모지’와 ‘콘크리트’로 표현되는 조각가 이진영의 작품세계

이윤오


언제부턴가 건축계에서 노출콘크리트 시공 및 인테리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도시재생 명목으로 옛 공장 등 폐건물을 원형 그대로 활용한 문화시설과 새로짓는 문화시설, 오가는 길거리에서 보이는 신축건물, 지인과 만나기로 한 카페 등에서 심심찮게 노출콘크리트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콘크리트를 접할 때, 생경하기보다 친근하게 느껴진다.

건축재료 ‘콘크리트’를 직접 만들어 여기에 가치를 새기는 ‘미술작가’가 있다. ‘이모지’작가 이진영이다. “미술을 하는 가장 거시적인 목표는 진정한 ‘가치’를 찾는데 있는 것 같다. 본질적으로 정말 변하지 않는 가치는 뭐가 있을까, 과연 내가 예술을 하는 행위로서 찾을 수 있을까.”라고 말한다.

이진영 작가는 2021년 석사졸업을 마치고, 이제 막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청년작가다. 2022년 개인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얼굴>, 단체전 <뉴드로잉 프로젝트>이 대표적이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년예술가생의첫지원>에 선정된 바 있다. 현재 구로문화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 ‘메이크구로창작소’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이진영 작가를 지난 6월 15일(목), 이진영 작가 작업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주소를 받고 보니, 최근 주상복합 등 재건축 추진으로 이슈된 바 있는 ‘고척공구상가’였다. 작업실이 공구상가에 있다니, 흥미로웠다. 지금이야, 디지털산업환경으로 급변하면서 생명력을 잃었지만, ‘고척공구상가’는 1988년 지어져, 35년 가까이 구로동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콘크리트는 이모지를 싣고

▶고척공구상가에 작업실이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 작업실은 구로문화재단 ‘메이크구로창작소’ 레지던시다. 현재 회화작가 2명, 미디어아트작가 1명, 나 포함 총 4명의 작가가 다 다른방에 상주하고 있다. 나는 작년 1기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 인연으로 ‘지밸리산업박물관’의 성장통 기획전시까지 이어지게 됐다. 작가로서 여기가 ‘공구상가’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제작이 필요한 것들을 주문하면 제작해 주시는 분들, 수리가 필요한 것은 즉시 수리를 해주는 분들이 계시고, 다양한 재료를 구하기 쉬워 좀 편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다. 재단측에서도 이런 취지로 고척공구상가에 작가 레지던시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업실을 보면 알겠지만, 환기가 잘 되고, 천장이 높은 구조로 되어 있어서 작업할 때 먼지 발생도 덜한 느낌이다.

▶이모지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나.

나는 주로 상반된 개념이 맞닿아서 빚어지는 일상 속 불편함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디지털환경에 익숙한 세대로서, 주로 이 환경에서 발현되는 감각에서 이모지작품이 탄생했다고 보면 된다, 쉽게 얘기하면 디지털세상에서 엄청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서 신속하게 많은 정보를 받아야 되는데, 이런 정보를 일상에 적용시켜야 할 때, 나타나는 불편함 같은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SNS 등 디지털공간 속에서의 대인관계와 현실 속 대인관계의 상관관계에서 오는 괴리감 같은거다. 예전에는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의 대인관계 구분이 명확했다면, 이제는 역으로 가상공간에서 대인관계맺기를 하지 않으면, 현실공간에서도 볼 일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가상세계라는 범위가 계속 확장되고 있지만, 여기서 느끼는 괴리감같은 부작용이 항상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이런 괴리감을 어떻게 다시 엮어낼지에 대한 고민에서 이모지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콘크리트를 왜 선택했고, 이모지를 콘크리트에 대입시키면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나.

콘크리트는 돌이 아닌데 엄청 돌인척하고 효율적으로 잘 쓰이는 재료다. 이 콘크리트의 속성과 닮은게 ‘이모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콘크리트에 ‘이모지’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모지는 즉각적으로 쓰일 수 있는 ‘효율성’이 ‘콘크리트’와 닮았다. 그러면서도 이모지는 원래 가볍고 빠르게 반복적으로 쓰여서 개성이 없다. 이들을 하나의 조각품으로 만들어서 그 가치를 전복시키는 작업을 한다고 보면 된다. 콘크리트라는 매체를 선택한 이유는 콘크리트가 가지고 있는 강한 물성 때문이다. 가벼운 속성의 이모지를 강한 물성의 콘크리트에 노동과 시간을 들여 부피, 무게, 질감을 부여하게 되면서 일종의 현대판 유물을 제작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이모지와 콘크리트는 이분법적이면서 상반된 개념을 빚어내고 있다. 콘크리트를 만난 이모지작품은 ‘평면과 입체’, ‘가벼움과 무거움’, ‘가상과 실제’, ‘자연과 인공’, ‘순간과 영원’, ‘복제와 개별’, ‘모방과 독창’ 등의 이분법적 개념이 충돌하고 공존하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지니게 된다.


〇 청년작가로서 성장통

지밸리산업박물관 성장통 전시에 참여했다. 참여소감은?

전시라는게 제 작업만 있는게 아니라, 그 전시를 기획해 주시고, 또 디자인해주시는 여러분들과 협업을 하는거다. 그래서 작업을 하는 것과 전시를 하는건 또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지밸리전시같은 경우, 담당 학예사님이 큰 주제를 끌고가는 방향성을 잃지 않으면서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너무 잘 형성해줬다. 나는 성장통에 대해 얘기하는 작가가 아니지만, 이번 전시를 위해 성장통과 연관된 작품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했다.

현재 앓고있는 성장통은 무엇이고, 본인이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그리고 아무래도 작가로서 성장통이라면, 작업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적으로 생계 등 전업작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나 고민하는 모든 것들이 성장통인 것 같다.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도 마찬가지로 작업과 관련된 거다. 누군가 내 작품을 좋아해줄 때, 목표한 계획대로 한 걸음씩 성취해나갈 때, 몇십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지 설계하는 나를 돌이켜봤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작업하면서 어려운점은 뭐냐

조각하는 사람들의 건강관련 이슈인 것 같다. 아무래도 요즘 스티로폼 같은 재료를 많이 쓰는데, 재료를 자를 때, 배출되는 가스가 몸에 엄청 안좋다. 그래서 마스크를 끼고 하는데도 다 뚫고 들어오고, 땀이 너무 나기도 한다. 작년에 나도 작업하다가 계속 병원을 다녔다. 아무래도 계속 무거운 시멘트를 들다보니, 손목관절이 너무 아파서 그런 것 같다. 클라이밍을 2년간 했는데도 더 손목을 쓰니까, 안좋은거 같다. 벌써부터 관절을 걱정하는 나이가 됐나싶다.


 내면의 美를 갖춘 이진영작가

이진영작가는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수영을 가고, 7시에 돌아와서 아침밥을 먹고, 9시에서 10시 사이에 고척공구상가 스튜디오로 와서 한창 작업하다가 귀가하면 저녁 8시라고 한다. 이렇게 계획적이고 부지런할 수가 없다. 분명 MBTI가 계획형 ‘J’일거 같아서, 지레 짐작하고 물어봤더니, 와우, 즉흥적인 ‘P’성향이라고 했다.

작가는 “작가로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예술가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하는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이어 롤모델로 삼고싶은 작가는 최근 남서울미술관에서 전시올린 조각가 ‘김윤신’선생님이란다. ‘김윤신’선생님을 직접 만나, 그 나이까지 어찌 작업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고생’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해서 그 말을 지금까지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은 가짜로 작업하는 태도가 아니라, 고생할 만큼의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냐라는 뜻이라고 덧붙엿다.

한편, 외면의 美만 추구하던 사회적 분위기는 날 것 그대로인 노출콘크리트 시공과 인테리어가 유행하면서 날 것 그대로의 진실되고 단단함을 보여주는 내면의 美적 가치를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다.

노출콘크리트가 주는 사회적 美의 가치와 이진영작가의 삶의 태도와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되고 단단한 삶의 태도 말이다.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이진영작가의 앞날을 응원한다.


출처: https://n-view.kr/n-now/design/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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