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상(圖像)과 명상(瞑想)

이원석 (서평 쓰는 법:독서의완성 저자)


이진영 작가의 작품은 명백히 도상성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는 도상, 상징, 지표의 세 가지 기호를 구분한 퍼스의 기호학을 따른 것이다. –약속에 따라 성립하는- 상징의 임의성(가령 신호등)이나 지표의 인접성과 다르게 도상은 유사성에 따라 성립된다. 이모지, 이모티콘은 유사성을 보여주는 도상성을 함축한다.

이진영 작가의 작업은 관객의 명상을 독려한다. 이런 도상적 접근이 담지하는 형태적 유사성은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작업은 현대인들이 하여금 바쁜 일상을 멈춰서고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계기를 제공한다. 명상이란 다른 게 아니다. 멈춰서서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밀려드는 데이터의 흐름 속에서 독립적 시각과 사유를 갖게 독려한다는 점에서 이진영 작가는 우리 시대의 명상가라 해도 될 것이다. 


이진영 작가와의 대담

이원석 : 이진영 작가님은 이모티콘을 콘크리트에 새기는 작품을 통해 도상과 상징을 이야기합니다. 작품에 얹힌 친숙한 이미지는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떤 점에서 도상 혹은 이모지⋅ 이모티콘의 구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진영 : 이전까지는 주로 기존에 실재하는 사물을 탐구했습니다. 각 사물은 상징적 의미나 개인적 기억을 내포하고 있어, 특정 사물을 변형하거나 재창조하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이모지⋅이모티콘은 제가 채택한 가상 속 또 다른 사물입니다. 다시 말해 관심을 둔 사물이 물질에서 가상으로 변한 것이죠. 온라인에서의 생활과 현실 속에서의 생활을 구별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계속 온라인 속 삶이 허구라고 느끼곤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을 허구라고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온라인에서는 모든 메시지가 정형화된 이미지로 전달됩니다. 이미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것을 클릭 한 번으로 전송하죠. 하지만 이를 실제로 말로 전하거나 글로 쓰는 건 훨씬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입니다. 이처럼 가상 공간은 내면적 사유와 지속되는 가치를 담고 있지 않기에 허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이 주는 가상의 감각을 벗어나, 조각이라는 단단한 매체로 현실적 감각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이원석 : 후배 집에 놀러 갔을 때의 일화가 떠오릅니다. 그 후배가 온라인 상에서 채팅을 하다가 상당히 화가 났는데, 막상 채팅 창에서는 분노를 감추고서 스마일 표시를 남기더군요.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진정성이 없는 상황이었죠. 감정 표현이란 오랜 시간을 들여 발화해야 마땅한데, 이모티콘 하나로 순식간에 매듭짓는 걸 보면서, 저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가벼울 수밖에 없겠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작품과 연결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데이터Data>는 스톤헨지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즉, 콘크리트로 무언가를 구현하는 작업 방식이 이번 작품으로 더 구체화 된 느낌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진영 : 이번 작품은 스티로폼 질감으로 된 벽돌 크기의 작은 조각들을 쌓음으로써, 데이터의 축적을 형상화했습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찍고, 그것들을 손쉽게 온라인에 공유하며 데이터를 쌓아갑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되새김질하지 않는 데이터들, 계속해서 축적되는 데이터만 있을 뿐이죠. 저는 이렇게 쌓아만 가는 행태가, 일종의 불안과 연관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데이터가 없던 고대에는 턱없이 많은 인력을 동원해가며 무덤을 만드는 등 자기의 존재를 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존재의 증명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라고도 보입니다. 이를 반영하듯, 지금은 모두가 데이터라는 도구로 자신에 대한 흔적을 무수히 남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원석 :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광범위하게 다룬 건지, 혹은 노동자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건지 궁금합니다.

이진영 : 현대인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공부란 자아의 확장에 목적이 있었다고 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가장 긍정적인 공부의 표본이었을 텐데, 지금은 결국 공부도 데이터를 생산하고 쌓아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학습 자체가 온라인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또 매일매일 이루어지는 검색도 공부의 일종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공부의 목적 자체가 진정한 자기의 발전에서는 멀어지는 게 아닐까요? 일견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에서 개인이 치러야 할 부담은 가중된 것 같습니다.

이원석 : 작품을 구상하면서 생각하셨던 G밸리의 청춘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진영 : 작업할 때 G밸리의 지역성 자체를 중점적으로 다루진 않았습니다. 그 대신,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얘기하는 유행어로 ‘욜로’랑 ‘갓생’이 있죠.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지 태도가 공존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결국 그것들은 불안이라는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더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며 고양감을 겪게 되고, 그로 인해 성공에 중독이 된다는. 그것이 지금 청춘들이 지향하는 ‘갓생’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갓생을 산다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되었죠. 하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환경에 있다고 보는 거지요. 디지털 속의 감각은 지극히 단숨에 이루어집니다. 이 자극적인 감각은 계속 사람의 역치(閾値)만 높이고 그 뒤에 더 큰 자극을 바라는 식으로 진행되는 반면, 조각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 부동(不動)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한 자리를 의연히 지키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건 전자와는 아예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이원석 : 그러면 작가님이 준비하고 있는 이 작품을 일종의 명상을 위한 매개로 봐도 되까요? 말씀하셨듯이 현대인은 사회 속에서 계속 정보를 쌓고, 그렇게 쌓아온 정보의 파도에 떠밀리기 십상이죠. 그 속에서 불어나는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려고 애를 쓰고. 이번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조금이라도 마음을 비우고,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요?

이진영 : 네, 그렇죠. 그건 제 작품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지금의 모든 예술 작품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 작품은 명상을 의도한 게 아니라 특별히 그런 분위기를 자아는 형상으로 보이진 않을 것 같습니다. 

이원석 : 관람객이 작품을 볼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침이 있나요?

이진영 : 우리는 평소에 데이터를 쌓아가는 행위에 대해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제 작품을 통해 그 행위 자체에 대해 인지하고, 습관적으로 축적 시킨 데이터를 상기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와 연결돼 있지만, 아무와도 소통하고 있지 않다.” 라는 말이 있죠. 바삐 어딘가에 접속하려는 강박은 잠시 내려놓고 차분하게 일상을 되새김질하는 경험이 되었으면 합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떠올리기보다는, 우리가 바쁘게 헤쳐 온 주변을 여유를 가지고 한 번씩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원석 : 다른 작가님의 작품 중에는 정답을 주지 않고, 관객을 해석의 놀이 속으로 초대하는 경우도 보입니다. 이진영 작가님의 작품은 조각을 통해 급속히 흘러가는 현대사회의 흐름 속에서, 오히려 잠깐 멈추고 생각을 더듬어보는 효과를 기대하게 됩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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